버크셔 해서웨이가 이탈리아 기술기업 벤딩 스푼스(Bending Spoons)에 3억3,000만 달러를 추가 투자한다. 7월 상장 당시 투입한 6억 달러를 더하면 누적 투자액은 약 10억 달러, 지분율은 약 4%에 이른다. 워런 버핏의 최고경영자 퇴임 이후 버크셔의 기술기업 투자 방향을 가늠할 거래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벤딩 스푼스는 수요일 버크셔가 주당 33달러에 자사 주식 1,000만 주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발표 전날 종가인 38달러보다 약 13% 낮은 가격이다. 소식이 전해진 뒤 주가는 이틀 연속 올라 상승률이 약 50%에 달했고, 금요일에는 하락했지만 이번 주 종가는 월요일 시초가보다 20% 넘게 높았다. 시장에서는 버핏과 버크셔의 투자로 기업에 관심이 쏠리는 현상을 ‘버핏 효과’라고 부른다.
루카 페라리 벤딩 스푼스 최고경영자(CEO) 겸 공동창업자는 공지에서 버크셔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자본 배분 기업 가운데 하나이자, 벤딩 스푼스가 오랫동안 배워 온 기업이라고 말했다. 버크셔는 이번 투자에 버핏이 직접 관여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인수 후 사업을 재편하는 벤딩 스푼스
벤딩 스푼스의 사업 모델은 디지털 기업을 인수한 뒤 조직과 기술, 제품, 마케팅을 손봐 수익성을 높이고, 여기서 나온 현금을 다시 인수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회사는 10년 넘게 이 전략을 이어 왔으며 AOL, 에버노트(Evernote), 비메오(Vimeo), 이벤트브라이트(Eventbrite), 위트랜스퍼(WeTransfer) 등을 인수했다. 지금까지 규모가 큰 사업을 매각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회사는 인수 이후 팀을 재편하고 기술 구조와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바꾸는 한편, 제품 개발 속도와 마케팅·수익화 방식을 개선한다고 설명한다. 인공지능도 사업 재편 과정에 자주 활용한다.
페라리는 에버노트를 사례로 들었다. 벤딩 스푼스가 2023년 초 에버노트를 인수했을 당시 직원 수는 약 350명이었다. 이후 12~18개월 사이 약 60명으로 줄었고, 현재는 약 20명이 운영하고 있다. 페라리는 에버노트가 올봄 약 10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일 수 있는 제품 업데이트를 내놓았다고도 밝혔다.
낮은 가격에 사는 버핏식 투자와는 다른 거래
버크셔의 기술기업 투자는 드문 편이다. 애플과 알파벳이 대표적인 예외다. 버핏은 대체로 이해하기 쉬운 사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매입하고, 투자에 일정한 ‘안전마진’을 두는 방식을 선호해 왔다. 높은 밸류에이션과 불확실한 수익 전망, 복잡한 제품·서비스는 전통적인 투자 기준과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거래 가격도 전형적인 저가 매수와는 거리가 있다. 벤딩 스푼스의 지난해 주당순이익은 0.32달러였고, 버크셔의 인수가격은 이를 100배 넘게 웃돈다. 다만 회사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6% 늘어난 7억400만 달러였으며, 조정 영업이익은 150% 증가한 3억8,1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두 회사의 인수 후 운영 방식도 다르다. 버크셔는 인수한 회사에 상당한 자율성을 주고 창업자나 기존 경영진이 계속 사업을 맡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벤딩 스푼스는 인수 기업을 적극적으로 재편하는 것을 핵심 전략으로 삼는다.
장기 보유를 지향하는 두 기업
운영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버크셔와 벤딩 스푼스는 인수한 기업을 빠르게 되팔기보다 장기간 보유하는 성향을 공유한다. 버크셔는 GEICO, 듀라셀(Duracell), 프루트 오브 더 룸(Fruit of the Loom), 파일럿 트래블 센터스(Pilot Travel Centers), BNSF 철도 등을 산하에 두고 있으며, 각 사업이 비교적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해 왔다.
벤딩 스푼스 역시 스스로를 ‘영구 보유자’로 내세우며, 자회사에서 나오는 현금으로 새 사업을 인수하는 버크셔의 모델을 참고하려 한다. 페라리는 의사결정을 본사에 과도하게 집중하면 직원들이 사업에 대한 주인의식을 잃을 수 있다며 모든 결정을 중앙에서 내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를 배우는 데 관심이 많다는 페라리의 설명은 지속적인 학습을 강조해 온 버핏과 고(故) 찰리 멍거 전 버크셔 부회장의 철학과도 닮은 점이 있다.
투자 규모만 보면 이번 거래는 버크셔 전체 자본 배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6월 말 기준 버크셔의 시가총액은 약 1조1,000억 달러, 현금 보유액은 약 3,650억 달러였다. 가장 큰 주식 보유분의 가치는 약 660억 달러다. 따라서 이번 거래는 금액 자체보다 버크셔가 앞으로 어떤 기술기업에 투자할지 보여주는 신호라는 점에서 더 관심을 끈다.
버핏 퇴임 이후 투자 기조에 쏠리는 관심
버핏은 올해 초 버크셔 CEO와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번 투자는 회사의 투자 기조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버크셔는 거래를 누가 주도했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현 투자 매니저 테드 웨슐러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신임 CEO 그레그 에이블도 결정에 참여했을 수 있다. 에이블은 올여름 비공개 거래에서 알파벳 투자액을 약 100억 달러 늘리기 전 버핏과 논의한 바 있다.
버핏이 벤딩 스푼스 투자에 직접 참여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거래가 버크셔의 기술기업 투자 확대를 체계적으로 예고하는지도 불분명하다. 현재 공개된 조건은 주당 33달러에 1,000만 주를 인수한다는 것이며, 발표 전 벤딩 스푼스 주가는 38달러였다. 시장은 투자 이후 양사의 기업가치와 인수 전략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