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기업 최고위직에 오르는 속도가 둔화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에서 열린 포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서밋’에서 Thrivent의 인사 책임자 Kelly Baker와 Upwork 최고경영자(CEO) Hayden Brown 등은 기업의 여성 리더 채용·육성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고, 불안정한 직장 환경이 승진 경로를 좁히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인재의 공급만이 아니라 기업이 잠재적 리더를 어떻게 발굴하고 키우며 지원하느냐에도 달려 있다는 설명이다.
여성 CEO 비중은 늘었지만 임원·이사회는 정체
포춘 500대 기업 가운데 여성 CEO가 이끄는 회사는 현재 56곳으로, 전체의 약 11.2%다. 6년 전 7.4%에서 상승했다. 그러나 기업 전반의 임원과 이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에 머물러 증가세가 멈췄다. 이사회 여성 비율은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하기도 했다.
Baker는 기업들이 빠르게 바뀌는 근무 환경에 대응하는 데 집중하면서 여성 리더 육성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밋에서 “조금만 속도를 늦춰도 정체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여성 임원 증가가 인재의 자연스러운 유입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기업이 채용과 육성, 승진에 꾸준히 투자하는지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다양성 논의 줄며 여성 역량에 대한 의문도
포춘 500대 기업의 전 CEO이자 현재 나스닥 이사인 Toni Townes-Whitley는 직장 내 다양성 논의가 줄어들면서 여성 리더의 육성과 승진도 관심을 덜 받고 있다고 봤다. 여성의 역량을 둘러싼 의문이 외부뿐 아니라 기업 내부와 이사회에서도 제기될 수 있지만, 이런 변화가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여성은 최고위직에 가까워질수록 여전히 장벽에 부딪힌다. 한편으로는 경력과 역량이 CEO 자리에 필요한 수준에 도달했는데도 스스로를 후보로 여기지 않는 여성도 있다. 글로벌 리더십 컨설팅업체 Russell Reynolds Associates의 Jenna Fisher 매니징 디렉터에 따르면, 직장 여성 가운데 CEO직을 고려했거나 맡고 싶다고 밝힌 비율은 36%에 그쳤다. Fisher는 기업이 후보자를 갑자기 만들어낼 수는 없다며, 인재 육성과 리더십 직책에 대한 인식 형성을 더 일찍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Hayden Brown도 CEO를 생각하지 못했다
Upwork CEO Hayden Brown 역시 한때 자신이 최고경영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여성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가정에서 자랐고, 어머니는 직장에서 여성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약 10년 전 회사 이사회 의장에게 “CEO가 돼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놀랐다고 회고했다.
Brown은 가정에서도 자녀가 성별과 리더십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려 한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을 성별 포용적인 내용으로 조정하고, 인물을 묘사할 때 ‘똑똑하다’ 대신 ‘노력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자녀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자질에 주목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은 어린 시절의 인식 형성에 초점을 두지만, 기업 내부의 제도와 지원도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멘토는 조언하고, 스폰서는 후보를 추천한다
Baker는 직장 변화를 넓히려면 남성의 참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급이 높거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멘토로서 경력 개발을 돕는 한편, 직업적 스폰서 역할을 하며 동료와 다른 관리자에게 잠재력 있는 여성 리더를 적극 추천할 수 있다. 멘토가 조언을 제공한다면, 스폰서는 후보자가 핵심 의사결정권자의 인정을 받도록 돕는다는 차이가 있다.
Fisher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논의가 예전만큼 자주 나오지 않더라도 여성 임원과 이사를 찾는 시장의 수요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기업에는 변화에 적응하고 신기술을 적용하는 역량도 중요해졌다. Russell Reynolds Associates의 연구에서는 여성이 AI 도입과 현장 적용에서 남성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Fisher는 이런 차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의지와 관련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수치는 엇갈린 흐름을 보여준다. 여성 CEO가 이끄는 포춘 500대 기업 비중은 6년 전보다 커졌지만, 임원과 이사회에서 여성의 전체 비중은 약 30%에 머물고 이사회 대표성은 하락했다. 서밋 참석자들은 승진 흐름이 후보자 수와 자기 인식뿐 아니라 기업의 지속적인 육성, 후보 추천, 경력 지원에도 좌우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