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이 온라인·영상 신원확인 규정을 개정해, 2026년 11월 1일부터 국가 전자신분증(e-ID)이나 적격 전자서명으로 계좌를 개설할 때 신청자가 실제로 현장에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도록 했다. 사진·영상 등으로 신원을 위조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조치로, 은행과 증권사, 핀테크 기업의 비대면 계좌 개설 및 자금세탁 방지 절차에 영향을 미친다.
FINMA는 범죄자가 위조 신분증으로 원격 계좌를 만들거나 피해자를 속여 계좌를 개설하게 한 뒤 불법 활동에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4월 19개 금융기관을 점검한 결과, 8곳에는 디지털 사기 대응을 위한 별도 정책이 없었다. 기존에는 신분증 사진을 제출해 계좌를 개설하는 경우 생체 확인이 적용됐으며, 개정 규정에 따라 국가 e-ID와 적격 전자서명 방식도 대상에 포함된다.
의견 수렴 뒤 e-ID 계좌 개설에도 생체 확인 적용
FINMA가 공개한 규정 초안의 의견 수렴 기간은 2025년 12월 16일부터 2026년 2월 27일까지였다. 초안에는 국가 e-ID와 적격 전자서명으로 계좌를 개설할 때 생체 확인을 요구하는 내용이 없었다. 그러나 일부 의견 제출자는 인공지능 도구를 이용한 신원 위조와 딥페이크가 신원 도용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며 관련 요건을 추가하라고 제안했고, FINMA는 이를 최종 규정에 반영했다.
의견을 제출한 24개 기관 가운데는 Swissquote Bank도 포함됐다. 이 은행은 2026년 6월 말 기준 고객 계좌 122만 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외환·차액결제거래(CFD) 서비스와 은행 업무를 제공한다. 마르크 뷔르키(Marc Bürki) 최고경영자(CEO)는 2월 26일 서명한 서한에서 스위스 은행 시스템을 겨냥한 사기를 막으려면 회람에 적힌 최소 요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Swissquote는 고객이 첫 송금에 사용하는 IBAN이 사기 관련 계좌 목록에 있는지 확인하자고 제안했다. 또 첫 입금액의 최저 기준을 다크웹에서 거래되는 ‘대포통장’ 가격보다 높게 설정하고, 신청자의 얼굴을 기존 고객 정보와 대조해 한 사람이 여러 신원으로 계좌를 개설하는지 확인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FINMA는 회람이 최소 기준을 정한 것이며 금융기관은 자체 위험과 사업 모델에 따라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문구를 Swissquote의 요청대로 규정 본문에 넣지는 않았다.
PayPal·Twint·카드 결제는 은행 송금 확인을 대체하지 못해
신분증 사본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고객은 본인 명의 계좌에서 송금해야 한다. 해당 계좌는 스위스나 리히텐슈타인, 또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금융행동특별조치기구(FATF) 회원 관할 지역의 은행에 개설돼 있어야 한다. 금융기관이 생체정보가 담긴 신분증 칩을 읽을 수 있다면 송금 요건은 면제된다.
일부 의견 제출자는 증권사나 카드 발급사, Twint, PayPal, 암호자산 서비스업체에서 들어오는 자금도 대체 수단으로 인정하자고 제안했다. FINMA는 은행 라이선스에 적용되는 감독·자금세탁 방지 체계가 더 높은 수준의 확인을 제공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융기관이 입금액의 출처가 실제 은행인지 모두 확인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인가 결제기관이나 아일랜드 전자화폐 기관이 보낸 자금은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FINMA는 초안에 포함했던 ‘역방향’ 은행 송금 방식도 최종안에서 제외했다. 스위스은행협회는 신청자가 신원확인에 쓰이는 코드를 제3자에게 넘기면 확인 절차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가 e-ID는 일반 온라인 개설에 사용, 영상 확인에는 제외
스위스 국가 e-ID는 일반적인 온라인 계좌 개설에서 실물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지만, 영상 신원확인에는 사용할 수 없다. FINMA에 따르면 e-ID에는 기계 판독 영역이나 QR코드가 없고 사본을 만들어 보관할 수도 없어 현행 영상 확인 방식의 요건에 맞지 않는다. 규정 시행일을 11월 1일로 정한 것은 연방 e-ID 조례 시행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다. 스위스 유권자들은 2025년 9월 국민투표에서 전자신분증법을 승인했다.
QR코드가 있는 스위스 운전면허증 등은 이제 기계 판독 영역이 있는 신분증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금융기관은 위치정보 등을 활용해 고객 주소를 디지털 방식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앞서 일부 의견 제출자는 공과금 고지서가 위조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Swissquote는 사기범들이 소셜미디어 자료와 유출된 개인정보를 조합해 허위 신원을 만든다고 밝혔다.
적격 전자서명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금융기관은 2027년 11월 1일까지 주소 확인과 생체 확인 절차를 추가해야 한다. EU eIDAS 규정에 따라 발급된 전자신분증은 현재 회람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FINMA는 해당 신분증을 인정하려면 국제적인 기술·규제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