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술주와 인공지능(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상당수 가정은 관련 자산을 보유하지 못해 그 수익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 투자자이자 경제학자인 사라 캐넌은 성인에게 기술주 지수에 투자할 초기 자금을 제공하는 ‘혁신계좌’를 제안했다. AI가 생산성과 부를 늘리는 과정에서 더 많은 가정이 자산시장에 참여하도록 하고, 고용 충격에 대비할 완충 자금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기술주 상승에도 제한적인 주식 보유층
2026년 상반기 기술 분야에 집중한 헤지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27%였고, 같은 기간 나스닥100지수는 약 20% 상승했다. 캐넌은 AI가 만들어내는 성장과 부의 증가가 빨라지고 있지만, 그 과실은 이미 기술 관련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주로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AI 활용이 계속 확대되면 주식시장에 참여하지 않은 가정은 이 같은 수익에서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격차는 잠재적인 고용 조정 문제와도 맞물린다. 가계가 전력 비용 상승이나 일자리 감소에 직면하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자산 수익은 얻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월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가운데 주식을 보유한 비율은 58%였으며, 주식 자산의 상당 부분은 퇴직계좌에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종목 고르지 않는 개인 명의 계좌
캐넌은 초기 자금을 기술주 지수에 투자하고, 민간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되 정부가 감독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계좌 보유자는 정해진 주기에 따라 수익을 인출할 수 있으며, 예를 들어 몇 년마다 자금을 찾는 구조가 가능하다. 정부가 AI 기업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는 것보다 개인이 분산된 지수 상품을 통해 참여하는 편이 적절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부가 특정 종목을 고르는 데 적합한 주체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 제안이 나온 배경에는 오픈AI가 정부가 회사 지분을 최대 5%까지 보유할 수 있다고 제시하고, 다른 선도 AI 기업에도 유사한 방식을 권고한 사례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진보 성향 민주당 인사들도 국민이 AI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캐넌의 구상은 정부가 기업 주주가 되는 대신 개인 계좌와 분산형 지수 투자를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캐넌은 과거 수익률을 활용한 예시도 제시했다. 10년 전 나스닥100지수에 1,000달러를 투자하고 지난 10년간의 연평균 수익률 21%가 적용됐다고 가정하면 현재 수익은 5,727달러 늘어난다. 초기 투자금이 5,000달러라면 수익은 약 28,635달러가 된다. 다만 이는 과거 성과를 바탕으로 한 계산이며 미래 수익을 보장하는 수치는 아니다. 기술주 지수의 성과는 달라질 수 있고 실제 계좌 수익도 시장 변동에 따라 움직인다.
아동 대상 ‘트럼프 계좌’와 알래스카 기금
혁신계좌 구상은 이미 법제화된 아동 투자계좌 모델을 참고했다. ‘One Big Beautiful Bill Act’에 따라 마련된 ‘트럼프 계좌’는 2025년부터 2028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 어린이에게 정부가 1,000달러를 출자해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 캐넌은 이와 유사한 장치를 성인에게도 확대해 AI로 경제 구조가 바뀌는 시기에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래스카주의 영구기금은 또 다른 참고 사례다. 주정부가 석유 수익의 일부를 투자하고, 그 운용 수익을 바탕으로 아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주민에게 매년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혁신계좌의 재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초기 자금을 제공할 수 있지만, 캐넌은 자선기부를 활용하면 재정적자를 직접 늘리지 않고도 시범사업을 더 빨리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AI 기업 창업자와 초기 직원, 투자자들, 그리고 오픈AI·앤트로픽 등 연구소와 연계된 재단이 자금을 출연할 후보로 거론됐다.
전 국민 지급과 선별 지원의 비용 차이
누구에게 계좌를 제공할지는 제도의 핵심 쟁점이다. 18세 이상 미국 성인 모두에게 1,000달러를 지급하면 예상 비용은 약 2,700억 달러에 이른다. 반면 순자산이 50만 달러 미만인 가정으로 대상을 제한하면 미국인의 약 70%를 포괄하면서 비용을 1,900억 달러까지 낮출 수 있다.
소득과 거주 지역, 업종별 실업 상황에 따라 선별 지원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캐넌은 ‘실업 트리거’를 한 예로 제시했다. 북미산업분류체계(NAICS) 코드로 측정한 특정 업종의 실업률이 지난 10년간 해당 업종 평균의 1.5배에 도달하면 그 업종 노동자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경제학계가 더 정교한 대상 선정 기준을 연구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더 넓은 의미의 ‘보편적 기본자본’ 구상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의 인사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왔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이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실제 시행에서는 사업 규모가 중요한 변수다. 50억 달러 규모의 시범사업을 행정비용을 제외하고 운영한다면 100만 명에게 각각 5,000달러의 초기 자금을 제공할 수 있다. 시범사업의 효과가 확인되면 정부나 자선자금으로 규모를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안이 가능하다.
임금 대체 아닌 재취업·전환기의 완충 자금
캐넌도 10년 뒤 투자 수익이 6,000달러 또는 2만9,000달러 늘어나는 것만으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의 소득을 보전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계좌 자금이 재교육과 창업, 고용 전환기를 버티는 데 필요한 자본으로 활용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선자금으로 지원하는 시범사업이라면 의회의 입법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시작할 수도 있다.
나스닥100지수나 기술주 비중이 높은 다른 지수가 향후 10년에도 연 21%의 수익률을 낸다는 보장은 없다. AI가 최종적으로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줄일지도 현재로서는 확정하기 어렵다. 캐넌의 주장은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자금 배분 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데 있다. AI의 수익이 소수 자산 보유자에게 계속 집중될 경우 기술 발전의 분배를 둘러싼 논쟁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계좌의 핵심은 기술 변화의 부담을 감수하는 더 많은 가정이 그 경제적 수익에도 일정 부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