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속되고 있지만,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전력망에 접속할 수 있는지와 실제로 어느 정도의 전력 부하가 가동될지는 전력회사와 규제당국, 투자자들이 함께 확인해야 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지역사회의 반대, 건설 인력 부족, 전력 설비의 긴 납기, AI 서비스 수요의 불확실성이 일부 사업을 지연시키거나 중단시키고 있다. 반대로 전력망 계획 당국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수요를 위해 과도하게 투자하거나, 준비 부족으로 공급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상황도 피해야 한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Relae(옛 Carbon Direct)는 6월, 2024년 1월 이후 지역사회 반대로 차단되거나 철회·보류된 AI 데이터센터 용량이 1,700억달러를 넘는다고 밝혔다. 이는 골드만삭스가 올해 미국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의 AI 인프라 투자액으로 예상한 약 5,810억달러의 일부에 해당한다. 다만 두 수치는 산정 기준이 달라 동일한 유형의 투자 손실로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골드만삭스는 5월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25년 수준에서 두 배 이상 늘어 2027년 66기가와트(GW)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지연과 취소를 감안하면 향후 1~2년 내 가동 예정인 데이터센터 용량 가운데 실제로 제때 운영에 들어가는 비중은 약 절반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전력 연구기관 EPRI는 데이터센터가 미국 전력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30년 9~17%, 2035년에는 최대 20%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텍사스, 474GW 규모 접속 대기열 재검토
텍사스에서는 수급 계획에 대한 부담이 특히 크게 나타나고 있다. 주 전력망 운영기관인 ERCOT는 총 474GW에 달하는 데이터센터 접속 신청 대기열을 재검토하기 위해 신규 접속 신청 접수를 중단했다. 이는 올해 여름 텍사스 전력망의 역대 최대 부하인 90GW를 소폭 웃도는 수준의 약 5배다. 규제당국과 전력망 운영기관은 대기열에 올라온 신청이 최종적으로 건설되는 부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Pablo Vegas ERCOT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4월 현재 예측치가 ERCOT의 향후 부하 증가 전망을 웃돈다고 말했다. 대규모 부하를 어떻게 식별하고 검증해 장기 계획에 반영할지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Thomas Gleeson 텍사스 공공사업위원회(PUCT) 위원장도 6월 관련 전망이 높게 잡혀 있으며, 일부 신청은 투기적 성격을 띨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청 건수가 급증한 데 더해 텍사스의 가정·상업·산업용 전력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과거 여유 용량이 있던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전력망 혼잡이 나타났다. Gleeson 위원장은 접속 계약을 체결하고 착공을 준비하는 고객이 필요한 전력을 확보해 신뢰할 수 있는 사업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신청 프로젝트가 실제로 실행 가능한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비용과 공급 신뢰도 위험이 다른 전력 사용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텍사스는 대규모 부하를 걸러내기 위한 제도도 손보고 있다. Greg Abbott 주지사는 지난해 여름 상원법안 6호에 서명했다. 이 법은 대규모 전력 고객에게 프로젝트 부지 통제권을 보유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전력망 보강 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도록 요구한다. 텍사스 내 다른 지역에 중복으로 제출한 접속 신청을 공개해야 하며, 전력망이 고정 부하를 줄여야 할 경우 출력 제한에도 응해야 한다.
PUCT는 6월 18일 75메가와트(MW) 초과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한 클러스터 연구 체계도 승인했다. 반복적이고 장기간 소요되는 개별 심사 절차를 대체하기 위한 조치다. 당시 ERCOT는 첫 번째 프로젝트 묶음인 ‘Batch Zero’의 최종 송전 계획을 2027년 말 공개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Abbott 주지사가 8월 대기열에 있는 모든 데이터센터를 먼저 심사하라고 요구하면서 ERCOT는 첫 클러스터 연구 절차를 연기했다. ERCOT는 12월까지 심사를 마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한 추산에 따르면 텍사스의 접속 중단으로 미국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파이프라인의 약 20%가 지연될 수 있으며, 중단이 내년까지 이어지면 영향 비중은 더 커질 수 있다.
규제 전력시장도 대규모 부하 검증
발전·송전·배전을 수직 계열화한 전력회사가 담당하는 시장에서도 실제 프로젝트와 투기성 신청을 구분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들 전력회사를 대표하는 업계 단체 Power for Tomorrow의 Brad Viator 회장은 신청이 늘면서 전력회사들이 접속 검토 수수료를 인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초기 인프라 비용 선납, 부하 증가 일정 등을 전력공급계약에 포함해 프로젝트가 중단됐을 때 유휴 설비 비용이 다른 고객에게 넘어갈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Viator 회장에 따르면 전력회사들은 대형 고객과의 전력공급계약이 체결됐거나 체결에 가까워진 뒤에야 해당 고객에게 필요한 신규 발전 설비를 부하 전망에 반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는 수직 계열화된 전력회사가 발전과 송전, 배전을 함께 관리하기 때문에 접속 이후의 전력 공급 능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시장의 접속 대기 기간은 약 1~5년인 반면, PJM 전력망 권역의 일부 비규제 시장에서는 8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전 텍사스 공공사업위원회 위원이자 Rábago Energy 대표인 Karl Rábago는 규제 전력회사의 수익 구조가 인프라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만큼, 대규모 부하 전망을 충분히 검증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발전소와 송배전 자산을 보유한 기업은 규제 절차에서 영향력이 클 수 있으므로, 공개된 전망을 지역사회 반대와 실제 프로젝트 진행 상황에 비춰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 컨설팅 업체 Grid Strategies는 지난해 11월 전력회사들이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에 제출한 데이터센터 부하 전망을 집계한 결과, 2030년 이전 업계에서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전망보다 약 40% 높았다고 밝혔다.
Rábago 대표는 주와 규제 관할권을 넘는 협력이 전망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그런 협력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규모가 어떻게 분포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아직 충분하지 않으며, 실제 프로젝트는 대규모 부하 요금제가 정한 기준보다 작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소형 데이터센터와 AI 수요가 변수
일부 전력회사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데이터센터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는 전력망에 접속하기가 비교적 쉽고 지역사회 반발도 적을 수 있다. NorthWestern Energy는 3월 말 몬태나 공공서비스위원회에 대규모 부하 요금제를 제출하면서 50MW 미만 부하는 직접적인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Brian Bird CEO는 이 요금제가 몬태나주가 양질의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몬태나 환경정보센터의 Anne Hedges 사무국장은 4월 이 방안이 시행되면 NorthWestern이 이론적으로 49MW 규모의 데이터센터 여러 곳을 같은 수준의 규제 없이 접속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력 소비자 보호가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플로리다주에서는 Ron DeSantis 주지사가 5월 50MW를 초과하는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접속 비용 전액을 부담하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는 플로리다 전력·조명회사(FPL)가 앞서 승인받은 대형 고객 요금제와 같은 방향이다. FPL은 NextEra 산하의 수직 계열화 전력회사다.
프로젝트 전망은 AI와 클라우드 서비스의 실제 수요에도 좌우된다. xAI는 5월 멤피스 데이터센터에서 이미 가동 중인 서버를 Anthropic에 임대하겠다고 밝혔다. Meta는 마이크로소프트의 Azure와 아마존의 AWS와 유사한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출시할 계획이다. 일부 기술 기업이 단기 자체 수요를 웃도는 컴퓨팅 역량을 보유할 수 있다는 의미지만, 시장에 이를 사용할 다른 고객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Bain & Company는 지난해 10월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이 AI 컴퓨팅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보다 선택적이고 실행 중심적인 성장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업자본연구센터(Center for Public Enterprise)의 자본시장 선임 연구원인 Advait Arun은 투기적 수요에 의존한 데이터센터 전망의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로부터 초기 자금을 확보한 프로젝트가 건설 과정의 장애물을 넘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것만으로 근거에 기반한 부하 전망이 과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전력망 확장 필요성이 프로젝트 수에만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2024년 버지니아주에서는 한 차례 송전 장애로 1.5GW 규모의 데이터센터 부하가 전력망에서 이탈했다. 북미전력신뢰도공사(NERC)도 최근 대형 컴퓨팅 시설의 부하가 갑자기 사라질 경우 전력 시스템의 신뢰도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터센터가 최종적으로 어느 정도 규모로 현실화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텍사스의 접속 심사, 각 주의 비용 분담 규칙, 부하 변화를 감당할 전력망의 능력은 향후 인프라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언제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