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억만장자를 대상으로 일회성 부유세를 부과하는 주민발의안 40호를 둘러싼 논쟁이 주(州) 세제 개편을 넘어 미국의 부의 분배와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전국적 논의로 번지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6명은 공개서한을 통해 이 발의안을 지지했다. 기술 부호가 집중된 캘리포니아가 먼저 시행할 경우 다른 주와 연방정부, 나아가 다른 국가로 유사한 정책이 확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발의안 40호는 자산이 10억달러를 넘는 캘리포니아 거주자에게 보유 자산의 5%에 해당하는 세금을 한 차례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개서한에는 다론 아제모을루, 아비지트 바네르지, 피터 다이아몬드, 에스테르 뒤플로, 폴 크루그먼,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서명했다. 이들은 과거에도 부유세를 지지하거나 초고액 자산가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을 주장해왔다.
캘리포니아 억만장자 250명, 자산 2조3천억달러
6명의 경제학자는 공개서한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억만장자 수와 보유 자산이 빠르게 늘면서 이 지역이 미국에서 빈부 격차가 가장 큰 곳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밝혔다. 이들의 추산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억만장자 약 250명은 총 2조3천억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019년부터 2025년 사이 이들의 자산은 약 1조4천억달러 증가했지만, 납부한 주 소득세는 자산 증가분의 1.6%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공개서한은 부유층이 경제와 사회에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자산이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일부 자본이득은 세제상 조정을 통해 과세가 늦춰지거나 회피되면서 자산 축적이 계속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스페이스X가 6월 상장하고, 앤트로픽이 올해 하반기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계획이며, 오픈AI도 내년 상장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캘리포니아의 억만장자 집단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됐다.
지지 측, 세수 1천억달러 전망
발의안 40호를 추진하는 국제서비스노동조합(SEIU) 서부 의료노동자 지부는 부유세로 1천억달러의 세수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연방정부의 의료비 지출 삭감에 따른 영향을 상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지자들은 세금을 납부하더라도 캘리포니아 최고 부유층은 여전히 세계적인 부호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대 측은 부유세가 경제성장과 스타트업 자금 조달을 위축시키고, 기술기업 창업자들이 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주식 상당량을 매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많은 창업자의 자산이 현금이나 유동성 높은 자산이 아니라 비상장기업 지분에 묶여 있다는 점이 핵심 쟁점이다. 발의안 지지자 중 일부도 유동성이 낮은 지분이나 창업자의 의결권까지 일괄적으로 과세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기업계와 노동계 내부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 세금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억만장자세에 반대하는 진영에 1억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일부 노동조합은 주정부가 다른 지출 항목을 우선해야 한다며 발의안에 반대하고 있다.
벤처투자 유입 비중이 지지 근거로 제시돼
6명의 경제학자는 공개서한에서 부유세가 실리콘밸리의 자본과 인재를 잃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이들은 2026년 초 이후 캘리포니아가 미국에서 새로 집행된 벤처투자 자금의 80%를 끌어들였다고 밝혔다. 2025년 이전에는 이 비중이 약 50%였다. 지지 측은 이 수치를 근거로 부유세 논의가 아직 미국 창업·벤처투자 시장에서 캘리포니아의 지위를 뚜렷하게 흔들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다만 반대 측은 세금이 한 차례 부과되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개서한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억만장자 일부를 보유한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이 자산에 과세하기로 결정한다면, 다른 주와 연방정부, 다른 국가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11월 투표 앞두고 찬반 격차 6%포인트
캘리포니아 유권자 사이에는 아직 압도적인 합의가 형성되지 않았다. 공공정책연구소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투표 가능성이 높은 유권자 가운데 발의안 40호에 찬성한 비율은 52%, 반대는 46%로 나타났다. 찬반 격차는 6%포인트였다.
발의안 40호의 효과를 약화하거나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는 다른 두 가지 조치도 과반의 지지를 얻었다. 발의안 41호는 모든 신규 세수가 캘리포니아의 기존 지출 상한 규정을 적용받도록 하는 내용으로, 찬성률 51%, 반대율 44%를 기록했다. 발의안 42호는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과 개인재산에 대한 과세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찬성률은 54%, 반대율은 43%였다.
이에 따라 발의안 40호가 11월 투표에서 통과되더라도 실제 시행 여부와 범위는 관련 후속 발의안의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여론조사 책임자인 마크 발다사레는 발의안 40호 지지 진영이 더 많은 유권자를 설득해야 하며, 투표 결과는 막판까지 분명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