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물가가 다시 오르는 상황에서도 추가 금리 인상에 찬성하지 않아 시장의 판단을 어렵게 했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로빈 브룩스는 워시를 매파나 비둘기파로 규정하기보다, 미국 정부의 장기 차입 비용을 좌우하는 장기 국채 금리를 어떻게 관리하려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미국의 부채 부담이 커지면서 장기 조달 금리는 통화정책 논의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총국가부채는 40조 달러를 넘어섰고, 민간이 보유한 연방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이른다. 9월에 끝난 2026 회계연도 연방정부의 이자 지출은 1조 달러를 웃돌아 국방비보다 많았다. 브룩스는 최근 연준의 정책 신호 변화를 물가나 다른 거시 지표만으로 해석하기보다, 장기 금리와 정부의 차입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시의 정책 신호가 엇갈려 보이는 이유
워시는 앞서 물가 상승을 두고 “선택”이라고 표현하며 인플레이션에 강경한 태도를 내비쳤다. 여름에는 대체 물가 지표를 주시하겠다고 했고, 채권시장이 금융 여건을 일부 긴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견해도 밝혔다. 8월 잭슨홀 회의에서는 매파적 발언을 했으며, 9월 연준은 만장일치로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나 물가가 다시 상승한 뒤 지난주 워시는 추가 인상에 동의하지 않았다. 입장 변화의 이유를 설명하거나 다음 결정에 관한 단서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시장에서는 이를 비둘기파적 신호로 받아들였다. 브룩스는 이런 엇갈림이 매파와 비둘기파 사이의 오락가락이라기보다 장기 금리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연준과 재무부가 차입 비용을 안정시키려는 공통 목표를 사실상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했지만, 관련 조치의 효과가 입증됐다는 뜻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장기 국채 환매를 늘리겠다고 예상 밖으로 발표했고, 발표 직후 금리는 한때 하락했다. 브룩스는 베선트가 일본의 엔화를 지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일도 언급했다. 일본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매각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였으며, 매각이 현실화할 경우 미 국채 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기 금리와 부채 경로를 좌우하는 변수들
장기 금리는 정책 당국의 조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란 전쟁이 다시 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는 유가와 국채 금리를 밀어 올렸고, 미국 경제의 강한 흐름도 물가 및 금리 전망을 높였다. 반면 인공지능(AI) 열풍이 식을 수 있다는 우려가 완화되면서 금리 상승 압력은 줄었다. 프랑스의 정치 혼란과 재정 문제로 유로존 부채 위험이 번질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자,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를 다시 사들인 점도 금리 하락에 영향을 줬다. 최근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5% 아래로 내려왔다.
명목 GDP 증가율이 금리보다 높으면 정부 차입 비용이 경제 규모보다 빠르게 불어나 부채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올해 국채 금리는 큰 폭으로 빠르게 올라 한때 의회예산국(CBO)의 기준 전망을 100bp 넘게 웃돌았다. CBO는 기준 시나리오에서 금리를 4.3%로 가정하고, 이보다 50bp와 150bp 높은 경우도 각각 평가했다.
금리가 기준 전망보다 150bp 높은 시나리오에서는 향후 10년간 순이자 지출이 4조9,000억 달러 늘고, 2036년 민간 보유 부채는 GDP의 133%까지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CBO 자료를 분석해 이 시나리오에서 정부 부채의 실효금리가 이르면 2028 회계연도에 장기 명목 GDP 성장률을 넘어설 수 있다고 봤다. 2028 회계연도는 2027년 10월 시작하며, 분석은 장기 명목 성장률을 4%로 가정했다.
미국의 3분기 명목 GDP 성장률은 5.6%였다. AI 투자 열기와 높은 물가가 모두 이 수치를 끌어올렸다. BofA는 10월 19일 AI 활용이 결국 생산성을 크게 높이지 못한다면 두 성장 동력이 모두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성장만으로 늘어나는 부채 부담을 감당할 수 있다는 가정도 낙관적이라는 평가다. 장기 금리가 명목 성장률을 계속 웃돌면 부채 지속 가능성에 부담이 커지고, 연준이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고 물가에 대응할 여지도 좁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