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와 세입위원회가 9월 16일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을 각각 추진했다. 금융서비스위원회는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을 마련하는 법안을 찬성 28표, 반대 21표로 통과시켰고, 세입위원회는 디지털자산 과세 법안을 찬성 38표, 반대 5표로 가결했다. 두 법안 모두 하원 본회의 표결과 상원 심의, 대통령 서명을 거쳐야 하므로 정식 법률이 되기까지는 여러 절차가 남아 있다.
이번 표결은 상원이 디지털자산 시장의 규제 체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디지털자산 시장 명확성 법안(CLARITY Act)’을 추진하지 못한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상원은 9월 15일 토론 종결에 필요한 절차 표결을 통과시키지 못했고, 해당 법안은 일단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다만 하원 위원회의 이번 조치는 상원 표결이 막힌 뒤에도 디지털자산 입법이 중단되지 않고 비트코인 비축과 세제 규정이라는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H.R. 8957,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 추진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가 통과시킨 H.R. 8957 ‘미국 비축 현대화법(American Reserve Modernization Act)’은 닉 베기치 하원의원이 5월 발의했다. 법안은 연방정부가 형사·민사 몰수 절차를 통해 확보한 비트코인을 재무부 비축 자산으로 편입하고, 최소 20년간 보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디지털자산은 별도의 비축 체계로 관리하도록 했다.
브라이언 스타일 하원의원은 연방정부가 비트코인을 계속 분산되고 일관되지 않은 방식으로 보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법안이 통과되면 재무부는 최종 몰수 절차를 거쳐 확보한 비트코인과 기타 디지털자산을 중앙 집중적으로 보관하게 된다. 핵심은 정부가 시장에서 비트코인을 즉시 매입하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몰수된 자산의 보관과 통합, 장기 보유 방식을 규정하는 데 있다.
블록체인 데이터 업체 아캄 인텔리전스는 기사 작성 시점 기준으로 미국 정부가 32만4,527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당시 가격 기준 가치는 약 248억달러라고 추산했다. H.R. 8957이 최종 승인되면 정부가 이미 통제하고 있는 이 자산이 전략적 비축 제도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다. 다만 구체적인 관리 방식과 자산 처분 권한, 집행 절차가 어떻게 정해질지는 향후 법안 문안과 행정부의 시행에 달려 있다.
디지털자산 세법안, 찬성 38표로 통과
하원 세입위원회는 H.R. 10357 ‘디지털자산 세금 확실성 법안(Digital Asset Tax Certainty Act)’을 찬성 38표, 반대 5표로 통과시켰다. 제이슨 스미스 세입위원장은 9월 14일 이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의 목표는 디지털자산에 대한 연방 차원의 과세 체계를 마련하고, 자산 거래에 적용되는 ‘워시 세일(wash sale)’ 규정을 디지털자산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워시 세일 규정은 일반적으로 투자자가 손실을 보고 자산을 매도한 뒤 단기간 내 같은 종류의 자산을 다시 매입하면서 세금상 손실을 신고하는 행위를 제한한다. 이 규정이 디지털자산에 적용되면 일부 거래자와 투자기관의 손실 신고, 자산 교체, 거래 기록 관리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법안이 디지털자산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거래에 제한을 적용할지는 전체 조문과 향후 규제 해석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제이슨 스미스 위원장은 이번 법안이 암호화폐와 기타 디지털자산의 실질적인 세무 처리를 다루는 미국 최초의 연방법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 인구의 약 4분의 1이 어떤 형태로든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6,700만명을 넘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보유자 기반을 고려하면 세제 변화는 전문 거래기관뿐 아니라 개인 보유자, 디지털자산 결제, 관련 기업의 운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위원회 통과 뒤 본회의·상원 심사 남아
현재 두 법안은 위원회 단계에서 통과됐을 뿐 미국 연방법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하원 본회의에서 가결된 뒤 상원 심의를 거쳐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서명이 필요하다. 제119대 의회의 회기는 내년 1월 종료될 예정이어서 남은 기간 안에 모든 입법 절차를 마칠 수 있을지가 변수다.
입법 경로를 보면 CLARITY Act가 상원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한 가운데 하원이 비트코인 비축과 디지털자산 과세 법안을 먼저 추진하며 미국 디지털자산 정책에 두 가지 구체적인 경로를 제시한 셈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향후 몰수된 비트코인이 장기 비축 자산으로 공식 편입될지, 다른 디지털자산은 어떤 기준으로 분리 관리될지, 워시 세일 규정의 적용 범위와 세금 신고 요건이 하원 본회의 및 상원 심의 과정에서 어떻게 바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