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가 유가의 다음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JP모건 에너지팀은 이란 충돌의 지속 기간과 최종 경로를 모델링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고,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5%대에 진입했으며, 휘발유와 경유 가격도 높은 수준이다. 당초 정책과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여겨졌던 주요 가격 지표들이 잇따라 기존 가정을 넘어선 셈이다.
JP모건, 기존 유가 시나리오 철회
Natasha Kaneva가 이끄는 JP모건 에너지 리서치팀은 이란 충돌 초기 미국 정부가 배럴당 100달러의 유가, 갤런당 5달러에 가까운 휘발유 가격, 4%의 헤드라인 인플레이션, 5%대의 10년물 국채금리를 용인하지 않을 것으로 가정했다. 이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이 올해 6월 전후로 다시 개방될 가능성을 전망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현재 여러 가정이 무너졌고,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오히려 더 불투명해졌다. 미국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37달러로, 전통적인 자동차 여행 성수기가 끝난 뒤에도 계절 조정 기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유 가격은 갤런당 6.31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북반구가 수요 성수기에 진입하고 있지만 재고는 역사적 저점에 머물러 있다.
이에 따라 원유시장 참가자들은 충돌이 언제 끝날지만이 아니라 해상 운송, 정제 능력, 에너지 재고, 미국 정책이 서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지도 판단해야 한다. 현재 시장에는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기준 시나리오가 없다.
이란 충돌의 기간이 최대 변수
충돌이 며칠 안에 끝날지, 수주간 이어질지, 그보다 길어질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상황이 추가로 악화되거나 공식적인 해결 없이 점진적으로 진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가와 휘발유 가격이 11월 3일 미국 선거 이후에야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 발언이 이란의 에너지 시설과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운항, 미국의 후속 정책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시장에서 명확히 해석되지 않고 있다.
일부 에너지시장 관계자들은 선거 이후 미국 정부가 이란의 석유 및 에너지 자산을 겨냥하는 등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정책이 현실화하면 단기적으로 유가가 오를 수 있다. 다만 시장이 이란의 향후 원유 수출 증가를 동시에 예상한다면 이후 가격이 다시 눌릴 가능성도 있다. 구체적인 정책 내용과 실제 수출량 변화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만큼, 아직 뚜렷한 경로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이란 경제와 자국 통화는 압박을 받고 있지만, 이란은 과거 선박 간 환적 등을 통해 일부 석유 흐름을 유지해 왔다. 미국도 앞서 선박 간 환적을 활용해 걸프 지역에서 석유를 운송했다. 대체 운송 및 결제 경로가 남아 있다면 공급 차질 규모는 시장의 초기 예상보다 작을 수 있다.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르지 않은 유가
현재 유가 선물은 대체로 배럴당 1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중동산 실물 원유의 조달 비용은 이보다 높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연결 대형 송유관이 드론 공격을 받았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 물량도 충돌 초기보다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유가는 125달러나 150달러, 또는 그 이상으로 치솟지 않았다.
이 같은 가격 흐름은 시장이 장기적인 공급 중단 가능성을 가격에 제한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수요 훼손, 충돌이 비교적 빠르게 끝날 것이라는 기대, 사우디 엔지니어들이 동서 송유관을 조기에 복구할 수 있다는 판단, 공개된 통계보다 실제 석유 흐름이 많다는 추정 등이 배경일 수 있다. 어느 요인이 우세한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공급 측면에서 여러 차질이 발생했는데도 유가가 100달러 안팎에 머무는 것 자체가 시장 신호다. 트레이더들이 높은 유가가 수요를 더 약화시킬 것으로 보거나, 앞으로 수개월 내 더 많은 원유가 시장에 다시 유입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공급 충격 상황에서 배럴당 150달러가 불가능한 가격은 아니지만, 현재 시장은 그 수준을 전제로 거래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산 경유 공급이 단기 부담
원유보다 경유 공급이 세계 경제에 더 직접적인 단기 부담이 될 수 있다. 러시아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경유 정제국이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내 일부 정유시설을 계속 공격하면서 글로벌 경유 공급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경유 명목 가격은 이미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 기준으로는 과거 더 높은 수준이 있었지만, 유럽 일부 지역의 경유 가격은 갤런당 10달러를 넘어 계속 상승하고 있다. 경유는 화물 운송, 농업, 산업, 발전에 폭넓게 사용된다. 가격 상승과 공급 감소가 이어지면 영향은 에너지기업에 그치지 않고 물류와 제조업 비용으로 확산될 수 있다.
월가의 관심은 셰브론과 BP로
유가를 둘러싼 거시 변수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주식 애널리스트들은 에너지주에 대한 견해를 조정하고 있다. 셰브론은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대형 에너지주 가운데 하나다. 골드만삭스는 셰브론에 대한 매수 의견을 재확인하고 12개월 목표주가를 15달러 올린 240달러로 제시했다. 이는 당시 주가보다 약 17% 높고, 월가 애널리스트 목표주가 중간값인 223달러도 웃돈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골드만삭스의 판단에 포함된 주요 변수다. 골드만삭스는 베네수엘라의 생산량이 2031년까지 두 배로 늘어 하루 약 60만 배럴에 이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셰브론의 발전사업 기회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셰브론은 베네수엘라에서 장기간 사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으며, 생산 회복 속도와 관련 에너지 협력에 대한 미국 정책이 자산 가치에 대한 시장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영국 석유기업 BP도 일부 기관의 관심 종목에 포함됐다. Evercore ISI는 BP를 전술적 아웃퍼폼 목록에 추가하면서 목표주가는 52달러로 유지했다. 애널리스트 Stephen Richardson은 BP의 재무상태표가 올해 하반기에 뚜렷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상품 가격 환경이 개선되고 회사가 부채를 줄이면 동종업체와의 밸류에이션 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BP는 최근 수년간 석유·가스 이외의 사업으로 적극적인 전환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신임 최고경영자 Meg O’Neill은 회사의 중심을 전통적인 에너지 사업으로 다시 옮기는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시장은 이 전략 조정이 현금흐름과 재무상태표를 개선하는 동시에 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밸류에이션 할인도 줄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크레센트 에너지 등 중소형주도 재평가
중소형 에너지주에서도 투자의견 조정이 나타났다. Truist는 Crescent Energy에 매수 의견과 19달러의 목표주가를 제시했다. 애널리스트 Gabe Daoud는 Crescent Energy가 동종업체보다 이익 기준 밸류에이션 할인을 받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투입으로 더 많은 자원 생산을 확보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Crescent Energy의 시가총액은 약 45억달러다. 주요 사업 지역은 텍사스주의 퍼미안 분지와 이글포드 셰일 지대다. 당시 주가는 약 13달러였고, Truist의 목표주가는 월가 목표주가 중간값인 17.44달러보다 높았다. 리서치기관 Stephens는 21달러로 가장 높은 목표주가를 제시했다. 앞으로는 자유현금흐름, 자본지출, 생산량 증가가 이러한 밸류에이션 가정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정제마진 확대에 정유주 강세
현재 에너지 부문에서 가장 뚜렷한 주식 흐름은 정유업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유주는 이번 주 초 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약세를 보였지만, 이후 여러 종목이 고점 부근에서 움직이거나 신고가를 다시 썼다. Valero, HF Sinclair, Marathon Petroleum은 지난주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Phillips 66, Par Pacific, PBF Energy, Delek도 역사적 고점에 가까운 수준에 있다.
이들 기업은 정제마진 확대의 수혜를 받고 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과 원유 가격의 차이로, 원유를 휘발유·경유·항공유로 가공할 때 정유업체가 확보할 수 있는 상대적인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오르면서 투자자들은 정유업체의 이익 창출력을 다시 평가했고, 관련 주가는 지난 수개월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다만 일부 정유주의 주가는 이미 월가 목표주가를 웃돌고 있다. Delek과 Par Pacific은 소수의 예외에 해당한다. 정제마진이 하락하거나 정책 제한으로 석유제품의 유통 경로가 바뀌면 기업 이익과 주가 밸류에이션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경유 수출 제한이 정제마진 바꿀 수도
백악관이 경유 수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할지는 정유업계가 주목하는 다음 정책 변수다. 씨티는 경유 수출 제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전면 금지가 시행되면 정유업체의 마진이 크게 낮아져 가동률을 줄일 수 있고, 결과적으로 휘발유와 항공유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수출이 전면 제한되면 정유업체는 현재의 수익 지지 기반을 잃을 수 있다. 최근 정제마진과 정유주 주가를 끌어올린 흐름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또 다른 우려를 제기한다. 경유는 일부 다른 석유제품처럼 판매 경로를 쉽게 바꾸기 어렵고, 기존 운송·유통 시스템도 지역적 제약이 크다는 점이다. 정유업체가 재고를 관리하기 위해 생산량을 줄이면 공급이 오히려 감소해 가격 압력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경유 수출 정책의 영향은 수출량 자체뿐 아니라 미국 정유시설 가동률, 재고 변화, 국내 유통 능력, 유럽 등 해외 시장의 공급 부족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시장은 아직 더 구체적인 정책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운임 상승으로 에너지 공급 비용 확대
관찰해야 할 변수는 유가뿐이 아니다. 원유를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운송하는 비용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에너지 운송비 상승은 실물 원유와 석유제품의 최종 인도 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운송량이 줄고 항로와 보험 계약이 차질을 빚으면서 유조선 운임은 에너지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선물시장의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더라도 운송비 상승은 정유사와 트레이더의 마진을 압박하고, 지역별 가격 차이를 확대할 수 있다.
한편 Venture Global의 최고경영자 Mike Sabel은 이번 주 인터뷰에서 중국과 체결한 신규 천연가스 계약, 미국의 액화천연가스 수요 증가, 중동 공급 차질이 가스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했다. 원유와 경유, 액화천연가스 시장이 동시에 운송과 공급 요인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에너지기업들은 앞으로도 가격과 수익성이 크게 엇갈리는 환경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