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갈등이 불러온 에너지 시장 변동성 확대
2026년 중동 지역에서 계속된 분쟁과 특히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 해협 폐쇄 사태,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맞물리면서 전 세계 원유와 정유 제품 시장이 장기 고변동성 상태에 진입했다. 이로 인해 원유 가격 변동 폭이 크게 확대되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위험 관리 수요가 증가했고,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거래되는 WTI 원유, 뉴욕 자동차용 휘발유(RBOB), 뉴욕항 디젤(ULSD) 선물 시장의 거래량과 활발도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선물시장 곡선에서 드러난 공급 긴장
2026년 2월 중동에서 긴장이 한층 고조되자, 세계 원유 시장은 근월물 가격이 장월물 가격보다 높은 이른바 '백워데이션' 현상에 진입했다. WTI 선물 기준으로 보면 2026년 5월 만기와 2027년 12월 만기 사이의 가격 차이가 종전 약 0.10달러/배럴에서 10달러/배럴 이상으로 급등했는데, 이는 공급 부족 우려가 크게 번진 결과다. 이같은 가격 구조는 중동에서 반복되는 휴전 협상과 재발하는 충돌이라는 복합 요인이 해소되지 않고 혼재한 상황을 시사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정유 제품 공급 차질 초래
중동 산 원유 수송의 핵심 경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반복적으로 차단되면서 원유뿐 아니라 정유 제품 공급에도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 뉴욕항 디젤 선물 시장에서는 8월 한때 스프레드가 배럴당 약 100달러에 육박하는 기록적 격차를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정유 제품 재고는 지속 감소하면서 미국 내 경유 및 휘발유 재고는 1억 330만 배럴까지 줄어 전년 동기 대비 약 9.5% 감소했으며, 5년 평균 재고 대비도 낮은 수준이다. 이로 인해 경유와 휘발유의 소매 가격은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미국 원유 수출 급증, 아태 지역 정유사 구매 확대
미국은 뛰어난 산유능력과 수출 인프라를 활용해 세계 원유 및 정유 제품 공급의 주요 허브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2026년 5월 미국의 원유 및 정유 제품 수출량은 하루 평균 1,350만 배럴로 기록적 수준에 도달,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증가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원유 수출이 처음으로 하루 250만 배럴을 넘어섰으며, 한국, 일본, 싱가포르가 주요 수입국이다. 전통적으로 중동산 원유에 의존해온 일본은 최근 중동 지역 공급 불안정을 대응하기 위해 미국산 원유 구매를 눈에 띄게 확대했다.
유럽, 미국 원유 의존도 증대로 공급 안정 모색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속적으로 압박받는 유럽 에너지 시장은 중동 분쟁 영향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 멕시코만산 원유 수입을 크게 늘렸다. 2026년 상반기 미국에서 서북유럽과 지중해 지역으로 향한 원유 수출은 하루 200만 배럴을 넘어 전년 동기 대비 약 20% 증가했다. 중동 원유 공급 제한 가능성을 감안할 때 미국산 원유는 유럽 시장에서 더욱 안정적인 대체 공급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증가하는 아시아·유럽 수요, WTI 선물 지표로서 입지 강화
아시아와 유럽이 미국 원유에 대한 수익을 늘리면서 WTI는 글로벌 원유 시장의 대표적 벤치마크 가격으로서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최근 북해 유전 시장에서 WTI의 미들랜드 원유가 가격 산정에 반영되면서 WTI 스프레드는 유럽 내 정유사들의 구매 결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시아 정유사들이 미국산 원유를 적극 활용하면서 WTI가 글로벌 원유 시장의 가격 신호 역할을 한층 강화하고 있는데, 이것은 특히 공급 차질과 가격 변동성이 커진 현재의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