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가 올해 8월 여러 미군 매점에서 발생한 냉장 설비 고장이 사이버 공격에 따른 것인지 조사하고 있다. 앞서 프랑스에서는 수백 곳의 슈퍼마켓 냉장 시스템이 원격 조작돼 식품이 상하고 일부 매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두 사건은 표적 설비와 고장 양상에 유사점이 있지만, 연관성을 보여주는 증거는 아직 없다. 미국 기지의 고장이 해킹으로 발생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냉장 설비가 멈추면 단순한 수리 비용을 넘어 식품 재고가 폐기될 수 있다. 기지 매점은 주둔 인력의 일상적인 물자 조달을 맡고 있어, 장기간 운영이 중단될 경우 기본 상품 공급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미군 매점 7곳 이상에서 냉장 설비 이상
미 국방부 감찰관실 산하 수사기관인 국방부 범죄수사국(DCIS)이 합동 조사를 주도하고 있다. 펜타곤은 진행 중인 법 집행 조사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올해 8월 냉장 설비 고장이 발생한 곳은 최소 7개 군 시설이다. 캘리포니아주 어윈 요새, 뉴멕시코주 홀로먼 공군기지,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 해군기지, 아칸소주 리틀록 공군기지, 와이오밍주 워런 공군기지, 조지아주 로빈스 공군기지, 애리조나주 화추카 요새가 포함됐다.
군 매점은 통상 기지 인력과 가족에게 민간 슈퍼마켓보다 약 25% 저렴한 보조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한다. 냉장 설비가 장기간 가동되지 않으면 수리비뿐 아니라 재고 손실과 기지 내 공급 일정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지 미국 내 고장으로 인한 구체적인 피해 규모나 설비에 대한 무단 접근 흔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버지니아커먼웰스대의 크리스토퍼 화이트 국토안보·비상대비 부교수는 약 두 달 사이 프랑스 슈퍼마켓과 미군 매점에서 비슷한 설비 고장이 발생한 점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사성만으로 같은 공격자가 두 사건을 일으켰다고 볼 수는 없으며, 미국 사건이 사이버 공격이었다는 점도 입증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슈퍼마켓 재고 손실 약 27만 유로
올해 10월 프랑스에서는 수백 곳의 슈퍼마켓 냉장·냉동 설비가 야간에 조작돼 온도가 화씨 122도(섭씨 50도) 이상으로 올라갔다. 식품이 변질됐고 일부 매장에서는 화재도 발생했다. 피해 매장에는 까르푸 80곳, 모노프리 약 24곳, 앵테르마르셰 150곳이 포함됐다. 파리 검찰은 이 사건을 ‘대규모’ 공격으로 규정했으며, 유럽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설비 이상이 보고됐다.
앵테르마르셰와 E.Leclerc가 신고한 재고 손실액은 합계 약 27만 유로, 미화 약 30만 달러로 추산됐다. 화이트 부교수는 식품 폐기는 다른 여러 사이버 사고의 간접 피해와 달리 되돌리기 어려운 직접 손실이라고 설명했다. 온도 관리 실패로 변질된 식품은 설비를 나중에 수리해도 복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당국의 보안 공지에 따르면 피해 설비에는 덴마크 제조사 댄포스(Danfoss)의 AK-SM·AK-SC 계열 냉장 시스템 원격 컨트롤러와 코플랜드(Copeland)의 xweb 및 Dixell xweb 장비가 포함됐다. 해당 장비는 오래된 펌웨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공격자가 인터넷을 통해 접근해 취약점을 악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프랑스와 미국은 프랑스 슈퍼마켓 사건에 대한 조사에서도 협력하고 있다. 국가 간 정보 공유는 공격 기법과 장비 관련 정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두 사건의 연관성이 확인됐다는 뜻은 아니다.
인터넷 연결 냉장 컨트롤러의 보안 취약점
카네기멜런대 전략기술연구소의 나디아 코스츄크 조교수는 연결 기능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많은 기기의 보안 설계는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냉장 컨트롤러가 네트워크에 연결된 상태에서 펌웨어 업데이트가 늦거나 접근 통제가 미흡하면 공격 경로가 될 수 있다. 그는 설계 단계부터 보안을 고려하고, 이미 설치된 장비도 가능한 공격 경로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이트 부교수는 상업용 냉장 시스템이 여러 체인 매장에서 비슷한 장비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공격자가 특정 시스템의 노출 지점을 찾으면 같은 수법을 다른 장소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비 고장은 재정적 손실뿐 아니라 공급 차질로도 이어질 수 있어, 영향을 노리는 공격자에게 매력적인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메릴랜드대 볼티모어카운티(UMBC)의 국제관계·사이버보안 조교수 그레고리 윙어는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등 국가 연계 행위자들이 겉으로는 별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는 사이버 작전을 수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동맹국 간 공격 특징과 기술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이런 활동을 식별하는 데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미국 기지 매점 사건과 프랑스 슈퍼마켓 사건의 공격 주체가 서로 다르더라도, 미국과 프랑스의 공동 조사는 정보 교환에 활용될 수 있다.
군수 지원 시설로 확대되는 사이버 위험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집계에 따르면 올해 9월 한 달에만 중대한 사이버 사건이 10건 넘게 발생했다. 사이버보안 벤처스(Cybersecurity Ventures)는 사이버 범죄로 인한 올해 전 세계 경제 피해가 10조8,00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2015년의 3조 달러보다 세 배 이상 큰 규모다.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가전제품과 산업 장비의 인터넷 연결이 늘면서 공격 수단과 잠재적 표적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군의 후방 지원 시설 역시 식품과 위생용품을 비롯한 일상 물자 공급에 의존한다. 미 해군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는 265일간의 연속 배치를 마치고 이달 샌디에이고로 돌아왔다. 이란 전쟁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승조원들은 식품과 위생용품 부족을 겪었고, 사기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받았다. 이 사례는 군 보급의 중요성을 보여주지만, 항공모함과 냉장 설비 조사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정보는 없다.
펜타곤은 아직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고, 미군 기지 설비 고장의 원인도 확인하지 않았다. 현재 밝혀야 할 쟁점은 네트워크 침입이 있었는지, 설비에 원격 악용이 가능한 취약점이 있었는지, 그리고 미국과 프랑스 사건 사이에 기술적 또는 공격 주체 차원의 연관성이 있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