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로 유럽의 에너지 수입 부담이 커지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11월 3일 해협이 사실상 폐쇄된 이후 유럽이 화석연료 수입에 1,270억 유로(약 1,420억 달러)를 추가로 지출했지만, 수입 물량은 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가스 재고가 낮은 상황에서 난방철에 접어들면서 공급과 가격 압박도 커지고 있다.
추가 수입 비용, 240억 유로에서 1,270억 유로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브뤼셀에서 열린 윈윈(WinWin) 정상회의에서 유럽이 석유와 가스를 들여오는 데 추가 비용을 지불했지만, 에너지는 “분자 하나도” 더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전쟁 발발 약 7주 뒤인 지난 4월 추가 부담을 약 240억 유로로 추산했다. 9월 말 댄 요르겐센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누적 비용이 1,000억 유로를 넘었다고 밝혔다.
수입 석유와 가스 의존도가 높으면 공급 충격과 위기가 함께 닥칠 수 있다는 게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설명이다. 에너지 수입 비용 증가는 기업과 가계의 연료비뿐 아니라 운송·생산·난방 비용에도 반영돼 경제 전반으로 파급될 수 있다.
공급처 다변화에도 수입 의존은 지속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EU에 대한 가스 공급을 크게 줄였다. 유럽 각국은 가격이 높은 가운데 재고 확보에 나서는 한편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 했다. EU의 러시아산 가스 수입 비중은 전쟁 전 약 45%에서 2025년 약 13%로 줄었다. EU 회원국들은 올해 1월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연말까지 중단하고, 2027년 가을까지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 수입을 끝내는 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러시아산 공급 감소분을 다른 지역의 수입으로 메우면서 미국과 중동산 가스 비중이 상당해졌다. 이란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도 EU 에너지 소비의 57%는 수입 화석연료에 의존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석유 운송량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통로다. 전쟁으로 유조선 통항이 사실상 멈췄으며, 페르시아만에서 들어오는 연료는 유럽 항공유와 경유 수입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낮은 가스 재고에 겨울철 수요 부담
추웠던 겨울을 보낸 뒤 EU의 가스 재고는 3월 하순 28.4%까지 떨어져 최근 5년 평균을 밑돌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화요일 EU의 난방철 진입 시점 가스 재고가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겨울이 춥고 해협 통항 차질이 이어지면 재고가 내년 3월 말 10%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유럽 가스망 운영사들은 혹한이 닥칠 경우 공급량이 수요보다 12~15% 부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 에너지 장관들은 10월 말 역내 소비 제한 방안을 논의했다.
요르겐센 집행위원은 올해 봄 회원국들에 자발적인 에너지 절약을 검토하라고 촉구했으며, 특히 교통 부문의 절감을 강조했다. IEA가 제시한 석유 절약 방안에는 1970년대 석유 위기 때 시행된 ‘자동차 없는 일요일’도 포함됐다. 9월에는 일부 EU 국가의 휘발유 소매가격이 위기 전보다 거의 50% 올라 갤런당 11달러를 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경유 가격 상승으로 트럭 운전사들이 일주일간 파업해 우유 운송이 차질을 빚고 치즈 생산업체도 영향을 받았다. 같은 기간 이탈리아 물가상승률은 5.4%로 올랐다. EU 당국자들은 석유와 가스 가격이 적어도 2027년 말까지 전쟁 전 수준을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EU, 화석연료 의존 축소 방침 재확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해 3월 유럽에 에너지를 다시 공급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러시아산 에너지로 돌아가는 것은 “전략적 실수”라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산불, 홍수뿐 아니라 수입 화석연료 의존도 비용 부담을 키운다고 지적하며, 수입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U는 2050년 기후중립을 달성하고 2040년까지 배출량을 9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EU가 2021년 이후 지속가능한 활동에 1조2,000억 유로 이상을 투자했다며, 기존 목표를 추진하고 청정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의 에너지 공급과 수입 비용은 가스 재고,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상황, 겨울철 기온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